제대로 즐기지 못한 공포 ‘우먼 인 블랙’

금방이라도 귀신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무대. 아기 울음소리와 소름끼치는 여자비명소리, 삐걱대며 홀로 흔들리고 있는 흔들의자.  여기가 바로 소금기 섞인 안개로 뒤덮인 영국이다. ‘우먼 인 블랙’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15년간 5,000회 이상 공연된 공포극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와이킷 탕이 연출을 했다. (와이킷 탕은 예전에 김혜수랑 사귄다고 스캔들이 났던 홍콩 연출가) 2명의 배우가 이끄는 연극으로 한 법무관이 자신이 겪은 유령 이야기를 친구와 가족들 앞에서 연극으로 보여주는 과정을 그린 연극이다. 특이한 점은 연극 속에 연극이란 설정에 이호성씨의 다양한 목소리 연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치명적으로 이 작품은 내게 잠을 줬다. 왜냐하면, 극중극에서 높낮이가 없는 설명조의 대본읽기가 계속 되기 때문이다. 말을 통한 관객의 상상을 통해 공포를 준다고 했지만 사실 난 그 대사 덕에 공포의 졸음과 끝없이 싸워야만 했다. 유령이라고 하는 여인이 가끔가다 쓱~ 무덤가 어둠 속에서 등장하여 영화 ‘디아더스’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려고 애썼지만 X파일로 다져진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간혹 소리를 치는 여자 관객이 있었지만)

아마도 ‘우먼 인 블랙’은 공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연극이 될 수도 있고, 웬만한 공포는 취급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졸린 연극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물론 공포영화 보면서 소리 지르기를 즐겨하는 사람에게는 분위기만으로도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아. 웃겼던 점. 마지막에는 과연 이 극이 끝난 거 맞나 싶을 정도로 생뚱맞게 끝나버려서 (커튼콜 인사도 없다) 다들 이거 끝난 거야 하며 서로 서로를 쳐다봤다. 관계자분이 오셔서 “연극 끝났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을 해 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다들 계속 앉아있을 뻔 했다.

2004.02.27 제일화재 세실극장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