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영상을 기록할 방법은 없을까?

2005. 9. 3. 22:49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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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강남에서 너무나도 오랜만에 시모나와 술 한잔을 했다. 둘 다 술을 잘 하지 않아서 회식 자리가 아닌 이상 둘이 일부러 술집에 가서 술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어제는 마음도 찜찜+꿀꿀해서 '맥주 한 잔이라도 마셨으면 좋겠다.' 라고 마음이 통해서 강남 뒷길에 테이블을 펼쳐놓은 작은 구멍가게에서 맥주 700ml짜리 한 병에 3천 원짜리 쥐포를 사서 둘이 나눠 마셨다. 우리는 화이팅을 외치며 건배를 했고, 오랜만에 마셔서인지 적당히 알딸딸해 진 나는 이런 우리들의 모습과 주변의 모습들이 너무도 서민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비쳐 분위기에 취해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 지금 이 행복한 장면을 누군가가 모두 영상으로 녹화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의식하여 V자 그린 그런 화면이 아닌 그 찰나의 나의 표정과 그 공간을 그대로 담은 생생한 영상.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지던 순간, 운동회 때 달리기 계주로 1등 하던 그 순간, 소풍 때 '호랑나비'를 부르며 장기자랑 하던 그 순간, 배낭 여행 때 브뤼셀의 초콜릿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역 나누어 희곡을 읽던 그 순간 등 사랑과 우정, 그리고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들을 말이다. 내 시선으로 바라본 그 장면들과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본 그 장면들을 모두 모아서 드라마처럼 영화처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도대체 어디다가 모아 두어야 이것들이 언제든지 꺼내보아도 낡거나 희미해 지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뇌용량 부족으로 인하여 백업도 안 되고 점점 사라져버리고 있으니 너무나도 안타깝다. 내가 찍어서 남기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겠지만 어디 그게 되나-_-; 순간을 즐기기 바쁜데 말이지. 영화 속에 보면 사람의 뇌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화면으로 보여주기도 하던데 혹시라도 내가 죽기 전에 실제로 이런 게 가능할까 모르겠다. 에이, 무겁지만 카메라를 계속 들고 다녀야겠다. 언제 어디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장면속에 내가 들어갈 지 모르니깐. 그러면 내 모습이 들어가 있지 않아도 내 시선만큼은 사진으로 기록해 둘 수 있을테니깐. 그래. 나만 부지런하면 하면 되는구나. 하.하.

뱀다리

1. 아! 생각해보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돈만 많으면 내 전용 촬영기사를 두어 나의 모든 것을 다큐멘터리로 찍어달라고 하면 내가 원하는 화면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하하-_-;

2. 9월달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포스팅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별일이 없어도 뭔가를 끄적여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