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기쁨이 넘치던 날, 슬라바를 만나다.

2004. 2. 14. 23:45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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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스노우쇼 끝나고 슬라바를 직접 만났습니다. 아직도 콩닥콩닥 흥분된 감정이 식지 않네요^^ 여러분께 저와 simon군이 슬라바와의 인연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

2002년 12월 1일 뮌헨 Tollwood 페스티벌

2002년 겨울 뮌헨에서 <스노우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전부터 보고 싶었었는데, 우연히도 그 당시 뮌헨에서 개최된 Tollwood 페스티벌에 <스노우쇼>가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죠.


공연은 이동식 빅탑에 디너쇼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공연장은 디너쇼라서 서빙 보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 수다떨고.. 다소 어수선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옷걸이 옷과의 사랑 장면에서는 감동을, 눈보라 씬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죠. 중간 인터미션 때는 배우들이 밥 먹던 사람들 가지고 짖궂은 장난을 했고 우리 일행중에서 j모양은 광대들에게 속옷을 빼앗기기도 했죠.^^  마지막에는 큰 공들이 뒷쪽까지 날아와서 다행히 어린애들처럼 같이 놀았답니다.


그런데 이런 놀자판 분위기 속에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오시더니 홀짝 홀짝 맥주를 마시며 놀고 있는 관객들을 보고 계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화들짝~ 놀라며 " 와.. 슬라바 아저씨다. " 라며 일제히 뒤를 돌아봤습니다. 일전에 듣기로는 이렇게 놀고 있는 관객들을 지켜보며 오묘한 표정으로 짓는 것마저도 <스노우쇼>의 계산된 연기일 것이다 라는 얘기가 있어서 혹시? 이것도 그런건가? 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다들 슬슬 눈치보며 아저씨와 사진 찍기 분위기로 몰고 갔죠.

그런데 옆에 있던 simon군이 "웬지 아저씨는 오늘 공연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은 거 같아요. 디너쇼라 하기 싫었나봐요." 라며 맥주를 마시며 시큰둥해 있는 아저씨의 표정을 읽더군요. 워낙 독일애들은 유럽사람들한테 인기가 없거니와 simon군도 디너쇼의 어려움을 알기에 배우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거 같았습니다


2004년 2월 14일 서울 LG아트센터

3번째로 다시 한국을 찾은 <스노우쇼>. 그런데 뮌헨 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작년부터 더 이상 슬라바 아저씨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죠. 아저씨는 연출만 맡기로 하신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 공연에는 아저씨가 한국을 방문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고, simon군은 뮌헨에서 찍은 <스노우쇼> 사진을 선사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좋은 생각! 즉시 실천에 옮겼죠^^

지난 번 뒷 좌석에 한이 맺혀서 이번에는 동호회 오.마.뮤를 통해서 제일 좋은 자리로 예매를 했답니다. 우리는 LG아트센터로 가는 길에 지하철 플랫폼 벤치에 앉아서 1시간 넘게 꼼지락 꼼지락 아저씨께 드릴 사진을 챙기고 한/영을 섞은 카드도 쓰고, 사진만 드리기에는 좀 허전해서 simon군이 녹음에 참가한 난타 OST까지 챙겼습니다. 과연 이 선물을 슬라바 아저씨한테 직접 전달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전달이 가능할지..사실 그 때까지 막연한 기대감만 있을 뿐이였습니다.


공연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지난 번에 놀지 못했던 걸 실컷 즐겼답니다. 스토리 라인도 읽을 수 있었고, 거미줄도 잡아보고, 눈도 맞아보고, 인터미션 시간에는 우리 자리쪽에 배우들이 계속 와서 물 뿌리고 어깨동무 시키고 의자를 건너다니고..(저도 배우가 끌어댕겨서 어깨동무에 참가를 했었죠^^;) 적극적 참여만이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앗~~~ ??? 앗!!!! 그런데 신나게 놀고 있는 바로 이 때, 슬라바 아저씨가 객석으로 들어오시는 게 제 눈에 띄었습니다. 오오.. 옆자리에 앉은 사람 좋겠다..으아으아... 이후로 공연 중에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아저씨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



2004년 2월 14일 서울 LG아트센터 무대 뒤

공연이 끝나자 바로 사라진 슬라바 아저씨. 무대 위의 가짜 슬라바(?) 아저씨와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simon군이 안내하시는 분께 전 난타 배우인데 슬라바 아저씨에게 전달할 선물이 있다며 만날 수 있을지를 물어봤습니다. (안내하시는 분은 지금 무대 앞에 계시다며 공연하신 분을 말씀하시더군요. 우리는 "진짜 슬라바 아저씨요. 연출하신.. -_-;;" 라며 연출자를 찾았습니다...클클)

3명의 스텝을 거쳐 우리의 바램이 전달된 뒤, 스텝 한 분이 무대 뒷 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simon군 덕분!) 콩콩 흥분되어 뛰는 가슴을 내심 쓸어내리며 발그레해진 얼굴로 슬라바 아저씨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찾아오신 외국분들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우리는 스노우쇼 T셔츠를 입으신 여자 스텝분과 기다려려야 했죠.


머슥한 분위기를 띄워보고자 아저씨께 드릴려고 했던 사진과 Tollwood 페스티벌 리플렛을 꺼내보이며, 뮌헨에서 <스노우쇼>를 봤고 사진을 드릴려고 왔다고 안되는 영어로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분이 사진속의 배우들을 하나씩 부르며 이건 누구고 이건 누구라며 사진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리플렛 속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와우~ 우리는 놀라며 "정말이요?"를 연발했습니다.

또 슬라바 아저씨 독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이때 아저씨가 혼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계셨다고 이야기 해 드리니깐 "원래 공연은 조용히 집중해야하는데 디너쇼는 시끄러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마 이 때는 슬라바씨가 관객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노는 것을 봤을 거에요. 그 순간에는 관객들이 슬라바씨를 위해 연기를 하고 있는 거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와..이걸 알아듣다니^^;)

역시 simon군이 읽은 아저씨의 표정이 맞았구나 라고 서로 감탄하며 뮌헨의 생각이 새록새록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simon군이 공연했었던 난타 OST와 영문 리플렛을 보여주면서 소개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작년 공연팀은 이미 <난타>를 관람했었다고 하더군요.

이 때 드디어 슬라바 아저씨가 등장. 우리는 감격의 인사를 했고 그 여자분은 아저씨께 러시아어로 설명을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난타>를 에딘버러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선물로 받은 사진과 CD에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여자분이 다시 리플렛 속의 배우를 가리키며 오늘 공연을 한 빨간색 머리 배우가 슬라바 아저씨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엣? 두 분 모두에게 아들이라구요? 그렇다면? 둘의 관계는? 부부? 부부세요? 라고 물어보니 맞다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와... 가족이 함께 일하며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는구나. 너무 부러웠습니다. 내가 동경하던 삶이였거든요. 너무 재미난 관계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고 아저씨와 기념사진, 그리고 정체가 밝혀진(?) 슬라바 아저씨의 부인과 사진을 찍었답니다.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은 뒤 아쉬운 이별을 했죠. 그러나 집에 돌아오는 길은 싱글벙글~ 행복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메일로 슬라바 아저씨께 오늘 찍은 사진을 보내드리고 내년 공연을 기약했습니다. 2004년 발렌타인데이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행복함으로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두 분께 감사 드리며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더 좋은 공연도 기대합니다.



슬라바 폴루닌
막스 밀러, 찰리 채플린, 마르셀 마르소 등과 같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의 뒤를 이어 21세기 광대예술의 계보를 잇고 있는 세계적인 마임이스트. 1993년 초연한 <스노우쇼>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 타임아웃상, 에딘버러 페스티벌 비평가상, 러시아 골든 마스크상 등 세계의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하며 전세계 50여 개국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년 간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